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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횡설수설

Report 후속편

by fermi 2003. 11. 27.
아래 " Report, Presentation " 글에서 다음 기회에~~  라고 아쉽게 끝난 이후
드디어 원글의 출처와 후속편을 찾았습니다.

자.. 역시 찬찬히 읽어 보시고 이야기 합시다.
저도 시간날때 찬찬히 읽어봐야 겠습니다.

출처 : http://www.seoprise.com/technote/read.cgi?board=yohan&x_number=1066740425

이름: 요한3장3절
2003/08-18

공돌이의 경영나라 탐험기 –(5)  

[초 중급 보고서 작성을 위한 맨손 체조]

이공계 출신들의 글쓰기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물론 다른 전공출신들이라고 해도 오십보백보에 대부분이 별로 다를 것도 없지만 이 사람들의 글에서는 좀더 선명하게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존재한다.

우선, 글쓰기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은 도표와 개념도로 대체된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폰트(Font)크기가 무척 작고 글을 많이 쓴다. 그것도 거의 깨알같이 쓴다. 그래서 그 기나긴 길이에서 오히려 글쓰기를 혐오하는 냄새가 난다. 글의 길이와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__?). 함축적인 표현으로 잘 정리된 요약문은 훨씬 더 쓰기 어렵다. 독후감은 쓰기 쉬어도 시(詩)는 쓰기 어려운 것과 같다. 그렇지만 그 안타까울 정도로 꼼꼼하게 설명한 내용이 그 꼼꼼함 때문에 질려서 ‘거의’ 읽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두 번째 특징은 상황을 설명하고 해결을 구하는 설득의 기본기가 안되어 있거나, 머리를 쥐어박고 싶도록 자기 사정만을 하소연하는 글들이다. 예를 들어 연구용 기자재를 구매해야 한다고 하자. 담당자는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회사 돈을 쓰자는 이유를 설득해야 한다. 의사결정권자가 무엇을 가장 알고 싶어할까? 기술적 탁월함? 생산성 향상? 투자대비 효과? 일견 그럴듯하지만 다 도움 안 되는 잡소리다.

이 사람이 가장 듣고 싶은 것은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이유’이다. 그것도 ‘꼭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 이유’를 듣고 싶어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의 100%의 보고서 내용 구성은 거의 새로운 기계에 대한 찬양과 그 효과에 집중되어 있다. 하나도 가렵지 않은 뒤통수만 벅벅 긁어주고 있는 거다. 미안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절박한 이유가 마련될 때까지 결정은 미루어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보고 내용이나 그 품질에 대한 판단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다. 허탈하겠지만 사실이다. 보고는 타이밍에 의해 강화되고 협박에 의해 확정되는 예술이다.

어쨌든 많은 이공계 출신들이 귀찮아하고, 피하고 싶고, 방정식 세우고 푸는 노력의 2배 이상 쏟아야 하는 이 글쓰기의 옴니버스 종합판이 바로 ‘보고서 쓰기’다.

<잘 된 보고서의 기준>

그러면 절대적으로 잘된 보고서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 주제는 가벼운 문제 제기와는 달리 답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대단히 깊은 수준의 고민을 필요로 한다. 또한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이다. 이쪽에서 박수 받았던 보고서가 저쪽에서는 상관들의 비웃음과 빨간펜 낙서장이 되는 수가 있다.

기업마다, 조직마다 의사결정의 방법과 선호하는 보고 형식이 다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의사를 결정해야 할 속도가 틀리고, 닥쳐오는 상황들에 대해 요구되는 대응력과 순발력도 틀리다. 심지어 비슷한 규모의 조직을 가진 회사들도 그 문화가 달라서 이쪽의 유능한 인재가 저쪽에서는 무능한 바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서로 자기 회사가 최고라고 여겨서 굳세게 자리를 지키기 때문에 이 말이 사실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삼성은 누가 뭐래도 빈틈없는 보고서와 보고 태도를 기준으로 인재를 판단하는 문화가 면면히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다. 넥타이 반듯하게 매고 깔끔하게 오와 열을 맞추어 정리된 아이디어를 얼마나 예쁘게 노래하느냐가 경쟁력이다. 선문답을 방불케 하는 질문 공세를 치밀한 사전 학습과 경험에 의한 노련함으로 넘기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핵심역량이다. 오자(誤字)는 상관에 대한 모욕에 가깝다. 문맥의 앞뒤가 맞아야 하고, 논리가 치밀해야 한다. 보고서 1매 베스트라고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지만 보고서의 검열이 습관화 되어 있어서 그 1장짜리의 생산 자체에 들여야 하는 노력이 간단해지지는 않을 문화다.

반면 정주영씨가 경영하던 시절의 현대그룹은 이러한 꾸며진 형식을 경멸하는 문화를 키워왔다. 현장의 걸걸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결정하는 문화를 중시한다. 구겨진 종이조각에 아이디어를 적어 보고해도 통과가 되었다는 전설적인 사례도 자랑한다. 보고서 꾸밀 시간 있으면 하나라도 더 팔고, 현장을 돌아다녀라 하는 회사 분위기의 반영이다. 이런 문화에서 잘 꾸며진 보고서는 오히려 설득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즉, 모범 답안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 사례만 놓고 보아도 보고서의 평가를 위해 보편적인 잣대를 만들어 보자고 하는 시도 자체가 절망적일 정도로 그 간극이 크다.

그렇다고 보고서를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가? 그것 역시 아니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더라도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준은 존재한다. 그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보고서가 주장하는 대로 의사결정을 이끌어 내었는가가 그 기준이다. 도장하나 받기 위해, 혹은 계약서 사인하나 받기 위해 그 공을 들여 애써 쓴 것 아닌가. 형식이 어떻든 보고를 받는 사람이 그 메시지에 만족하거나, 그 메시지에서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설득되었다면 보고서는 잘된 것이다.

그렇다고 형식 기준이 없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람들 입맛이 아무리 달라 보여도 맛있는 음식점에는 사람들이 들끓는다. 재미있는 영화는 줄은 선다. 분명히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맛’과 ‘재미’가 있어서 일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정규분포의 평균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거주한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 보편성을 가진다는 전제는 분명히 타당하다. 물론 양 극단에 있는 선각자나 ‘명품’ 매니아는 동의하지 않을 지 몰라도.

보고서나 프리젠테이션도 마찬가지다. 보고서에도 품질이 있다. 또한 보편적인 의사결정자가 편안하게 여기는 기본 형식과 속성들이 있다. 여기서 보편적이라고 말한 것은 일반 조직에 적용된다는 의미이다. 특정 골통 매니아 계층을 위한 형식은 포함하지 않는다.

기업은 ‘합리성의 화신(化身)’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무서운 집단이다. 전문성을 빙자한 선문답은 절간에서는 멋있을 지는 몰라도 기업에서의 보고용 형식으로는 비난 받아 마땅할 커뮤니케이션의 주적(主敵)이다. 많은 이공계인의 실패와 좌절은 전문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문용어로 설득하고자 하는 가망 없는 의사소통 노력에서 시작된다.

그러면, 어떤 속성들이 양품 보고서와 불량품 보고서를 갈라 놓고 있을까? 양품 보고서가 가지는 속성과 형식들을 단계별로 열거하고 ‘보고 행위’라는 공연 개념으로 종합해 보도록 하자.

<1단계: 관심을 끄는 보고서 쓰기>

첫째, 처음부터 강한 관심(Strong Attention)을 얻어내는 보고서는 좋은 보고서이다. 보고는 의사결정권자와의 대화이고 협상이다. 맛없는 반찬의 가짓수만 늘린다고 고객이 만족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의사결정권자는 시간에 쫓긴다. 요점을 알고 싶어하고 그 요점이 가치 있거나 중요한 것이기를 원한다. 이 사람들은 서론이 쓸데없이 길거나, 요점이 명확하지 않은 보고를 어떻게 처리할 지 아는 사람들이다. 그가 시계를 자주 쳐다보게 되면 아마 다음 숙제를 잔뜩 해야 할 것이라고 기대해도 틀리지 않는다.

반면 처음부터 강한 관심을 끄는 카피(Copy)와 잘 요약된 메시지를 통해 이슈(Issue)에 대해 강한 관심을 유도했다면 좋은 보고로서 1차 평가기준은 통과한 셈이다. 일단 상대로 하여금 듣고, 생각해보겠다는 의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경험으로는 이 첫 단계가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까다롭다. 정말 상대적이다. 선이 굵고 간단명료한 커뮤니케이션 성향을 가진 사람과, 섬세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보고서의 첫 머리와 스타일은 절대적으로 달라야 한다. 만약 보고선상에 있는 임원과 대표이사가 각각 성향이 반대라면 정말 고단한 길을 돌아가야 한다.

어쨌든, 상대를 설득 하기 위해서는 그 성향을 염두에 두고 보고서가 면밀하게 기획되어야 한다는 것은 철칙에 가깝다. 그래서 과거에 작성한 보고서를 대충 손봐서 함부로 리바이벌하는 행위는 정말 심사숙고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프로페셔널의 자존심을 걸고 절대로 권하고 싶지 않다. 때가 다르고, 장소가 다르고, 사람이 다른데 죽은 텍스트가 기능하는가?

이 첫 단계에서 필요한 보고의 핵심 기술은 ‘호기심’ 혹은 ‘충격’ 만들기 이다. 실제로 시중에 나와있는 프리젠테이션 기술의 많은 부분은 이 관심 끌기를 위해 할애되어 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짙은 화장’이다. 내가 보기엔 그 디자인 양식의 화려함과 현란한 기법에도 불구하고 공들인 노력에 비해 효과는 별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디자인이나 효과가 아무리 좋으면 뭐하나. 아무도 보고서 디자인을 보고 중대한 의사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포장은 눈길을 끄는 것으로 제 할 일을 다한 것이다. 디자인에 필요이상의 시간과 애를 쓰지 말라는 충고다.

실용적인 그들에게는 오히려 깔끔한 목차 혹은 요약문이 훨씬 더 결정적이다. 전체 보고의 개요를 짐작하게 하고, 결론 까지도 도출해내는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면 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보고서다. 사실 잘된 보고서라면 이 요약문 1장만 보고도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대목도 착각하면 안 된다. 노련한 의사결정권자나 고객은 이 한 장에서 고민의 폭과 깊이까지도 읽을 수 있도록 훈련된 사람들이다. 잔 기술 따위로 설득될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그 뒤에 본문이나 첨부를 붙여서 제출하는 보고서의 구성방법은 대단히 중요하다. 슬쩍 훑어만 봐도 그 고민의 무게와 진지함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보고서에서 보여주어야 할 것은 논리가 아니라 신뢰이기 때문이다. 논리로써 사실을 확인하고, 신뢰로써 비로소 행동을 결정한다. 보고자의 의지가 신뢰로 읽혀지지 않는 한 설득은 결코 성사되지 않는다.

<2단계: 긴장감 있는 보고서 쓰기>

둘째, 일단 관심을 끌었다고 해도 뒷심이 약하면 설득은 달아나 버린다. 그래서 그 관심을 강화시키는 흐름을 가진 보고서는 잘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즉, 적절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보고는 조바심, 위기감 혹은 탐욕이 확대되는 과정을 성공적으로 설계한 결과이다.

이 설계 과정 역시 첫 번째 관문과 같이 고객(의사결정권자)과의 심리게임의 요소가 강하다. 너무 강하면 겁을 먹고, 너무 약하면 관심이 줄어든다. 전망이 너무 좋으면 의심하고, 평범하면 시큰둥하고,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부정적이면 가차없이 기각시켜버린다. 주장하는 것이 너무 많으면 주의가 산만해지고, 너무 단순하거나 직관적이면 전략 마인드의 부실을 의심한다.

이 두 번째 단계에서 빠지는 함정은 ‘편향된 근거’이다. 과장된 표현이나 의도가 드러나는 데이터 조작은 경영 고수(高手)의 자존심을 모독하는 반칙이자 자살 행위이다. 어디까지나 객관적 증거와 공개된 사실을 동원해서 긴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엄격한 규칙이다.

이 긴장의 설계과정은 회사에서 활약하는 쟁쟁한 프리젠테이션 전문가들의 노하우(=秘技)에 가깝다. 초보적이지만 가장 많이 구사되는 기술 중의 하나가 두 가지 대립개념을 병치(竝置)시키면서 상승시키는 방법이다. 기회(Opportunity)와 위협(Threatening), 이득 (Profit) 과 손실(Loss), 장기(Long term)와 단기(Short term), 강점(Strength)과 약점(Weakness), 외부 환경(Environments)과 내부 역량(Competence) 등 대립되는 요소들을 늘어놓고 균형(Balance)을 의도적으로 깨뜨리는 조작을 가한다.

이 균형을 깨뜨리는 과정이 극적이고 사실적 일수록 설득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전형적인 결과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나타난다. ‘기회보다 위협이 높게 평가 되지만, 이러 저러한 내부 역량으로 극복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됨. 단기적인 손실에도 불구하고 이만 저만해서 장기적으로는 상당한 이득이 기대됨.’ 이것이 무슨 말인가? 여러모로 오밀조밀 따져 봤더니 타당성이 나온다는 의견을 분석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이도록 표현한 것이다.

<3단계: 호의적인 결론을 이끄는 보고서 쓰기>

셋째, 의사결정권자의 호의를 유지하면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조성하는 보고서는 고급의 잘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관문에서의 팽팽한 긴장감 조성과정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보고 받는 사람에게 임무(Mission)를 인식시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나와 같은 해법에 도달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아직 하나가 빠져있다. 그것은 프로젝트에 대한 호의이다. 긴장만 있고 호의가 없다면 상대는 악착같이 다른 대안을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세 번째 관문의 키워드는 ‘고객의 입맛(코드)에 맞춰라’ 는 것이 그 골자가 되겠다. 즉 의사결정권자가 현재 고민하는 문제의 해결과정과 강한 관련을 가지도록 모든 아이디어를 조직해야 한다. 즉 보고서의 감추어진 주어(主語)는 항상 의사결정권자가 되어야 한다. (=You Oriented). 마치 보고 받는 자가 자기 ‘고견(高見)’을 확인하는 것처럼 설계되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에 적용되는 절대적인 진리에 가깝다. 아쉽지만 대단히 많은 메시지 전달자는 이 진리와 별로 친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려고 한다. 상대는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듣지 않을 권리와 함께 시간낭비를 강요하는 사람들을 응징할 권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자주 잊는다. 반면 이렇게 상대방의 관심에 맞추어 직접 찔러주는 구성은 대단히 현시(顯示)적이고 즉각적인 의사결정 효과를 가져온다.

그렇다고 의사 결정권자의 의사에 무조건 맞추는 아부나 맹목적 추종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세 번째 단계의 함정은 바로 ‘합의된 기만’이다. 손쉽게 유도될 결론이다. 먼지를 뒤집어 쓰고 싶지 않은 보고자의 비겁함과, 내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하는 보고 받는 자의 오만함이 짜고 치는 타협이다. 중대한 책임과 권한을 요구하지도 않고 아무런 위험 부담 도 지고 싶지 않은 나약함이 만들어낼 합작품이다.

이러한 보고는 그 관심도와 흥미거리 넘치는 공감에도 불구하고 결코 문제를 베어 넘기지 못한다. 그래서 조직에 허전함과 부족감을 남긴다. 자세 좋고 동작 좋은데 피와 살이 튀는 전장에 선봉으로 나가서 싸우기는 싫은, 입만 살아 있는 족속들이 빠지는 마지막 함정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참모(Staff)’라는 직함으로 인정 받고 자알 살아간다.

그러나, 바로 이 단계에서 비로소 장차 리더가 될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의 거장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을 주장하는데 거침이 없다. 사안에 대해 지나치게 고집스럽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따르지도 않는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에게 불쾌감을 남기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낸다. 정말 필요하다면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공계 출신에 이런 영웅들이 많다. 미국의 10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중 공학도 출신이 가장 많단다. 참고로 두 번째가 경제학 출신이다.

실제 보고서에서는 어떤 기법과 초식으로 나타나는가? 여기에도 초보적인 패턴이 있다. 첫째는 일의 우선순위를 대단히 잘 펼쳐놓아야 한다. 반찬은 많아 보일수록 좋은 법이다. 둘째는 논지의 전개 과정부터 과감한 가지치기를 하면서 대안의 수를 일찌감치 줄여버려야 한다. 반항하면 어리석어 보이게 설계한다. 셋째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가 날카롭게 읽히도록 해야 한다. 그 의지 속에는 결정권자가 공범 혹은 주범이라는 암시가 들어가도록 약을 뿌려놓아야 한다. 반찬은 많은데 선택의 여지가 실제로 크지 않게 된다. 그러나 외통수는 곤란하다. 항상 결정권자가 조정할 몫을 남겨놓거나 대안을 던져 주거나, 그가 결정할 문제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보통 이렇게 몰아간다.

명심해야 할 것은 결정해야 할 시점에는 결정권자도 협상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의사결정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위험이 따르는 의사결정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자 만큼 알고 있지 못하니 항상 불안하다.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의심한다. 그럴만한 명분만 있다면 언제든지 뒤집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의 협상을 예측하지 못하고, 대응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제안은 흔연히 결정되기 어렵다. 우유부단한 결정권자의 경우에는 암시적인 협박도 필요하다. 그 흔한 사장님 경영방침이나, 비즈니스 명언하나 인용하면서 바보 되기 싫으면 알아서 결정하라는 식으로.

여기까지 제법 괜찮은 보고서를 만드는 기본기를 이야기 했다. 정말 별거 없다. 관심을 끌어당기고, 주제에 대한 흥미와 긴장을 유지시키고, 자기 일처럼 애정을 가지고 결정하게 만들라는 3단계 기초이자 맨손 체조다.

당연한 이야기이고 단순한 이야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정도에 도달한 사람을 보고서의 귀재(鬼才)들이 모여있다는 삼성에서도 별로 못 봤다. 그 크나큰 회사나 사업부 하나에 이 정도 보고서를 긁을 수 있는 선수들은 많아야 10명이다. 그것도 대부분 5년 이상을 깨져가면서 보고역량이 경쟁력인 살벌한 조직에서 살아남은 베테랑들이다.

무슨 의미인가? 원리는 쉽지만 구현은 어렵다는 이야기다. 망치 쓰는 법을 안다고 미켈란젤로 수준의 조각 작품이 튀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조잡한 기술만 가지고 무엇을 깨고 만들 수 있을까?

자신의 아이디어와 지식을 조직하는 연습이 안되어 있다면, 또한 말과 글을 써서 메시지의 출력과 농담(濃淡)을 정교하게 다스릴 수 있는 기본기가 갖추어 있지 않다면, 더 나아가 사람의 심리를 헤아리고 거침없이 휘몰아 갈만한 배짱과 통찰력이 부족하다면 5년의 피나는 연습도 부족한 것이 바로 보고와 협상 그리고, 설득으로 이어지는 인간사 경영의 종합 예술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역시 길다… 맨손체조가 끝났으니 다음은 막대기 다루는 법을 써야지~~
글구… 사실은 여기까지가 보고서 파트의 서론이다. 히~ 야고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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